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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은정 (한남대학교)
저널정보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한국민족문화 한국민족문화 제38호
발행연도
2010.11
수록면
35 - 64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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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식민지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던 한국 사회의 많은 것을 변화시켰고 미술인의 활동에도 일정 부분 변화를 가져왔다. 월북과 월남 그리고 부산으로의 피난으로 대표되는 작품활동 지역의 변화는 근거지를 잃은 작가들이 고향과 경제력을 상실하게 함으로써 개인적인 패배감을 강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공황까지 야기시켜 작가 자신의 세계를 개척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전쟁 중에도 화가들은 다방에서 개인전이나 그룹전을 열어 창작열을 불태웠으며 대한미술협회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전열을 정비하기도 하였다.
그림 그릴 재료가 곤궁하고 생활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미술에 열중할 수 있다는 프로의식과 예술에의 의지를 볼 수 있는 이들 전시문화에는 당시의 상황에 대응한 작가의 현실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현실 도피로서의 순수에의 집념, 무능한 가장으로서 현실적으로 해낼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그림그리기, 그 어느 것이든 한국전쟁기 화단의 활동은 멈추지 않았는데 이는 상당히 중요하며 고무적인 일이다. 다만 이념의 갈등이 빚어낸 전쟁이고 자신의 국토에서 발발한 전쟁이지만 정작 자신들은 전쟁의 주체가 되지 못한 전쟁이 한국전쟁이었다는 뼈아픈 사실을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쟁이 건국초기에 비하여 한층 더 강화된 반공이념을 정당화시키는 상황에서 미술단체와 미술제도 그리고 개개인은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념적 성향에 따라 세속적 성공과 좌절이 결정되고 마는 한계 상황에 설 수 밖에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인적 구성의 변화는 남한 내에서도 마산에 있던 임호나 이준이 부산으로 왔고, 또 휴전과 함께 이준은 서울에서 열린 제2회 〈국전〉에 화려하게 등장하였다. 미술인의 이동은 월남이나 월북 이외에 남한 내에서도 지방에의 정착과 지방미술인의 상경으로 이루어졌다. 피난민으로서 미술가들의 위상은 거주지를 옮겼음에도 끊임없이 전시를 하거나 미술작품의 창작을 쉬지 않음으로써 미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한 것이었다.
일찍이 미술에서 그렇게 활발하게 직접적으로 중앙과 지방의 교류가 이루어졌던 적은 없었다. 미술인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곳의 환경과 의미를 느꼈고 그것을 어떠한 방식이든 작품에 투사하였다. 박고석의 부산의 여러 장소에 대한 풍경이나 이중섭의 제주도 풍경이 그러한 예이다. 또한 부산에 거주하는 작가들에게 다른 지역 작가들 특히 서울에서 피난온 모더니즘 계열의 자극은 자신이 속한 지역의 색채에 대한 깊이있는 논의로 이어져 전통에 대한 관심과 민족적인 미술의 확산으로 이어졌던 것도 주목할 일이다.
지방과 중앙 혹은 피난민 화가들과 지역작가들과의 관계는 일방적 영향관계로 파악했을 때, 상대에 대한 부정으로 작용하여 문화적 교류 혹은 충격이라는 사실조차 부정하게 되는 것을 본다. 그리고 당시에조차 그러한 시각은 중앙의 모더니즘 대 지방의 전통이라는 이원적인 시각을 양산하는 배경이 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임시 수도의 화단
3. 피난지 제주도의 화가들
4. 빨치산과 호남화단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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