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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영하 (성균관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66
발행연도
2012.6
수록면
209 - 252 (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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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기사는 <광개토대왕릉비>의 전체 비문에 비추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근대 이후 일본과 한국이 경험한 역사의 암영이 짙게 드리움으로써, 신묘년기사가 전하려던 실상 파악에 장애가 있었을 따름이다. 여기에서는 광개토왕의 정복 결과로 편제된 고구려의 지배질서와 관련하여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신묘년기사의 국제관계는 고구려와 백제의 적대관계 및 고구려와 신라의 우호관계를 기본으로 백제와 신라, 신라와 왜의 관계가 연동하고 있었다. 신라가 전진과의 통교를 계기로 고구려에 대한 종속적인 입장으로 선회함으로써, 백제와 신라는 적대관계로 바뀌었다. 백제가 고구려와 대적하기 위해 왜를 동원하여 신라를 견제함으로써, 신라와 왜는 적대관계로 전환했다. 한편 백제와 연합한 왜는 한반도 남부의 정세 변화에 변수로 작용했을 뿐이었다.
일본학계는 왜주어설의 입장에서 신묘년기사의 결자 부분에 신라의 보입을 전제로 임나 또는 가라를 보입했다. 한편 비문변조설에 자극된 한국학계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하려는 고구려주어설이 주류를 이루었다. 여기에서는 ‘來渡□破’의 1자 결자와 ‘□□□羅’의 3자 결자에 각각 ‘王’자와 ‘任那加’羅의 보입을 시론했다. 광개토왕은 이미 복속되어 있던 신라를 새삼 정복할 이유가 없었던 데 반해, 왜와 연합한 백제 및 임나가라가 새로이 고구려에 복속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묘년기사는 6년의 백제 항복부터 10년의 임나가라 귀복까지를 총괄하는 도론이었다. 정복 활동의 해석에서는 비문의 구조 분석보다 역사적 의미 파악에 주목했다. 광개토왕은 정복하여 고구려의 지배질서로 편제하거나 정벌하여 전과만을 획득할 대상으로 구분하고 있었다. 백제?임나가라에 대해서는 정복-복속관계를 맺었고, 백신?신라?동부여에 대해서는 순수-조공관계로 강화했다. 한편 고구려의 지배 질서에 포함될 수 없는 패려?왜?후연은 정벌-전과 획득의 대상일 따름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신묘년기사의 국제관계
Ⅲ. 신묘년기사의 해석 논리
Ⅳ. 정복과 지배질서의 편제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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