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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주현 (경북대)
저널정보
한국현대문학회 한국현대문학연구 한국현대문학연구 제48집
발행연도
2016.4
수록면
149 - 180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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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는 신채호를 여러 차례 만났고, 또한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광수가 신채호를 만난 것은 총 4차례 정도 확인된다. 1910년 정주에서, 1913년 상해에서, 1918년 북경에서, 그리고 1919년 상해에서이다. 물론 이광수는 신채호를 만나기 이전부터 신채호의 글을 읽었고, 그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이광수가 『우리 영웅』을 썼을 때부터 이미 신채호의『수군 제일 위인 이순신』을 읽었을 것으로 보이는 징후들이 포착된다. 이후에도 신채호의 글을 적지 않게 읽었고, 특히 그의 역사관으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광수의 『이순신』과 『사랑의 동명왕』등에서도 신채호의 영향이 엿보인다.
1918년경 북경에서 이광수와 신채호의 만남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만남에서 신채호는 이광수에게 제언 내지 충고를 한 것으로 보이며, 신채호의 혈전론이 이광수의 『청년독립단선언서』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1919년 다시 상해에서 만난 신채호와 이광수는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각자의 길을 간다. 그것은 임시정부에서 이승만의 대통령 추대와 독립 노선의 차이 등 복잡한 상황으로 말미암는다. 이로 인해 신채호는 북경으로 돌아가 『천고』 발간에 나서고, 이광수는 『독립신문』 주필을 그만두고 몰래 국내에 들어옴으로써 이들은 완전한 타인으로 살아간다. 대의와 절개를 강조했던 신채호와 사랑과 용서를 강조했던 이광수이었기에 일제의 야욕 앞에서 하나는 비타협의 감옥행을, 하나는 타협을 통한 훼절의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들어가는 말
2. 이광수와 신채호의 세 차례 만남
3. 「수군 제일 위인 이순신」과 「이순신」의 관련성
4. 1918년 북경에서 또 한 번의 만남
5. 「조선사」와『사랑의 동명왕』의 관련성
6. 마무리
참고문헌
영문초록

참고문헌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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