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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희용 (서울시립대학교)
저널정보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서울학연구 서울학연구 제67호
발행연도
2017.5
수록면
67 - 107 (41page)
DOI
10.17647/jss.2017.05.6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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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때 창건된 경희궁은 임진왜란을 겪은 이후의 역동적인 시대상황과 새롭게 재건되는 도시공간과의 관련 속에서 조성되었다. 경희궁은 순조때 화재로 훼손되었다가 복구되었는데, 당시의 복원공사는 서궐 최후의 공사였다. 이후 고종 때 경복궁 복원을 위해 대부분의 전각이 이축되어 거의 빈터로 되는 큰 변화를 겪었으며, 공궐(空闕)로 변화된 궁터는 대한제국기에 경운궁(덕수궁)과 함께 경영되면서 다시 궁궐의 위상에 커다란 변동을 가져왔다.
식민지시기에 숭정전과 흥화문을 비롯한 서궐의 상징성을 지속시켰던 전각들이 도성의 동남쪽 조계사(현 동국대)와 박문사 등으로 이전되고, 궁궐터에는 경성중학교와 관사 등이 들어서면서 경희궁은 파괴되어 조선궁궐이었다는 장소로서의 상징성만 겨우 유지하게 되었다.
해방 이후에 들어와서도 교육공간으로 사용된 경희궁터는 1970년-1980년대 들어와서 서울의 도시계획으로 인한 교육공간의 이전 및 지속적인 발굴조사를 비롯한 궁궐 영역의 사적 지정과 역사공원으로의 변모를 통해서 옛 조선궁궐의 위상과 상징성을 서서히 되살려 내고 있다.
이러한 경희궁은 조선궁궐 가운데 가장 많은 변화를 겪어온 궁궐이었다. 또한 다른 궁궐보다도 도시변동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던 궁궐이기도 했다. 이에 본 연구는 한양에서 경성을 지나 서울 도시공간의 역동적인 변화과정 속에서 경희궁의 변화과정을 이해하고자 했다.

목차

Ⅰ. 서론
Ⅱ. 조선시대 경희궁의 위상과 공간구성
Ⅲ. 대한제국기 이후 경희궁과 주변공간의 변화
Ⅲ. 결론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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