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태웅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역사학연구소 역사연구 역사연구 제33호
발행연도
2017.12
수록면
95 - 132 (38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1925년(을축년) 7월 한반도에서는 20세기 최고의 홍수가 발생하였다. 서울과 경기의 경우, 비가 7월 16일과 18일 사이에 300~500밀리미터가 내릴 정도였다. 한강 범람으로 인해 사망자와 재산 피해액이 각각 647명, 1억 3천만 원(1년 예산의 58%)에 이르렀다. 한강에 연접한 이촌동의 경우, 이 홍수로 말미암아 廢洞이 되었다.
이러한 폐동을 야기한 홍수 피해는 일제가 이촌동 조선인 주민의 요구대로 이 지역에 제방을 수축하였다면 예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제는 이런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채 일본인 거주 지역에만 제방을 수축하였다. 심지어 을축년 홍수 이후에는 이촌동을 폐동으로 만들어 조선인의 거주를 금지하였다.
일제 당국의 이러한 시책은 1920년대 초부터 추진해 왔던 ‘대경성’ 도시개발계획의 일환으로 龍山을, 日本人을 위한 日本人의 商業地區로 개발시키고자 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재원 부족으로 소기의 계획대로 추진하지 못하였지만 일제는 시시때때로 이촌동 조선인 주민을 축출하고자 하였다. 이는 일제가 수행했던 수해 복구의 底意 즉 실제를 잘 보여준다. 여기에는 도시계획을 추진했던 일제당국, 일본인 상공인들 특히 토목 청부업자의 그림자가 엿보인다. 이촌동이라는 재난의 현장에서 민족 차별의 논리와 자본 축적의 논리가 결합하여 관철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는 민족·계급 차별의 논리에 입각하되 개발의 논리와 연계하여 조선인 빈민 배척을 넘어 일본인 자본가의 이윤 축적을 지원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는 일제가 그들의 통치 근거로 자주 내세웠던 公共性의 훼손을 의미한다.

목차

국문초록
머리말
Ⅰ. 예고된 범람과 대홍수 직전 용산 일대 피해 실태
Ⅱ. 이촌동 주민들의 제방 축조 청원과 대홍수의 피해
Ⅲ. 일제의 差別的 救濟 및 歪曲宣傳과 조선인 언론 탄압
Ⅳ. 일제의 이촌동 개발 계획과 조선인 빈민 축출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1)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8-911-001736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