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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영화 (성균관대학교)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85輯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49 - 83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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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사회에서 통치시스템은 왕권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이다. 특히 율령의 반포와 시행의 문제는 항상 주요한 논쟁의 대상이었다. 5∼6세기에 걸쳐서 나타난 신라의 비들은 이러한 논쟁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제공하였으며, 그 중심에는 敎가 있었다. 교의 등장은 문서 행정과 연관되는 것으로, 왕의 명령을 교라는 문서를 통해 하달, 시행하는 시스템이 작동함을 의미하였다. 그러므로 왕의 명령과 교의상관관계를 검토하는 것은 왕권의 실질적 내용을 파악하는 데에 중요한 연결고리라 생각된다.
왕의 命과 令은 마립간 시기를 거치면서 제도의 마련, 정비와 연관되어 있었다. 왕의 명령의 실질적인 문서인 교는 『삼국사기』에는 법흥왕대 등장했으나, 금석문 자료에서는 마립간 시기부터 등장하였다. 마립간 시기는 고구려와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제도와 문물이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이를 계기로 제도의 마련 및 정비의 여건이 마련되는 시점이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금석문 자료에 의하면 교는 “共論”을 통해 발포되기는 하나, 점차 법흥왕대를 거치면서 불교와 율령을 기반으로 왕이 지배층 내부에서 배타적 권력을 독점해 나갔으며 〈적성비〉 단계에서는 왕 단독으로 교를 발포하였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타났던 〈적성비〉의 “국법”은 결국 법흥왕과 진흥왕대를 거쳐 확장된 영역에 보편적이고 동일한 법을 관철시키려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다만 지방에서는 중앙의 현실적인 지배력이 작동하였다고 하더라도 아직 토착신앙과 관습법을 율령적 사고로 전환시키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냉수리비〉와 〈봉평리비〉에서 교의 반포와 함께 행해졌던 “살우” 제의와 誓詞는 여전히 지방민에게 왕의 권위가 하늘로부터 보증받는 것이라는 것에 의미를 둔 것이었다면, 〈남산신성비 〉 단계에서의 법의 운운과 서사는 이를 극복하고 왕이 법이나 제도를 통해 일반 민들을 통제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목차

국문 초록
Ⅰ. 머리말
Ⅱ. 『삼국사기』에 나타나는 왕의 命·令
Ⅲ. 금석문에서의 “敎”와 “國法”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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