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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병준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45호
발행연도
2019.4
수록면
133 - 168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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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왕조의 대외정책에서 가장 우선한 것은 북방 유목민이고 그 다음이 서역이며, 한반도를 포함한 동방은 그 다음이었다. 당조 역시 기본적으로 그러한 순서에 따랐지만, 서남방의 吐蕃을 방치하여 큰 후환을 남긴다. 당조가 토번을 방치한 가장 큰 이유는 한반도 공격을 위해서였다. 물론 당조가 토번이나 서역을 전혀 방치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는 당시 당조가 서방보다 한반도를 우선한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결과로 당조의 서역 지배는 토번 등에 의해 위기를 맞고 한반도마저 방기하게 된다. 한반도에 대한 집착이 대외전략의 실패로 이어졌던 것이다.
당의 기미주부 제도는 한반도에서 큰 변화를 보였다. 특히 663년 4월 당조가 신라를 雞林州都督府로 삼은 것은 기미주 제도의 일대 변화이다. 기미주는 원래 이민족들을 여러 단위로 세분하여 분할 지배하는 제도지만, 계림주에 이르면 하나의 국가가 하나의 기미주로 되어 사실상 冊立과 차이가 없게 된 것이다. 그 전에도 몇몇 지역에서 변형된 기미주가 출현하였지만, 계림주는 그 종결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은 뒤에 발해에도 적용되어 홀한주도독부가 설치되었다.
계림주와 홀한주라는 형식은 당과 신라 · 발해의 상호 이해관계를 충족시켜 화평관계를 유지하는 매개가 되었다. 즉 신라 · 발해의 입장에서는 형식적 기미주가 되는 대신에 일반의 책립관계보다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어 교류상 이점을 얻을 수 있었고, 당의 입장에서는 두 나라를 기미주로 삼았다는 명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당의 입장에서 ‘기미주 관계’는 오랫동안 속박되었던 ‘군현회복론’에서 벗어나는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당의 세계전략과 한반도 정책
Ⅲ. 당의 雞林州 설치와 唐新關係의 전개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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