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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91輯
발행연도
2019.7
수록면
53 - 96 (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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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충청남도 공주지역의 3.1운동을 살펴보았다. 공주지역의 3.1운동은 광무황제의 서거,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주창, 대한제국기 공주지역의 천도교․기독교 세력 확장 및 애국계몽운동의 활성화, 일제의 식민지배에 따른 한국인의 불만 등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였다.
최초 시위는 3월 14일 신상면 유구리에서 발생하였고, 마지막 시위는 4월 3일 정안면과 탄천면에서 일어났다. 총 16회의 시위가 확인되며, 운동이 가장 활성화된 시점은 4월 초인 1일부터 3일까지로 이때 13회의 시위가 일어났다. 이 같은 경향은 전국적 추세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수형기록에서 확인되는 공주지역 3.1운동 참여자는 총 99명이었다. 연령을 보면, 10대 7명, 20대 39명, 30대 30명, 40대 16명, 50대 2명, 60대 4명으로 20~30대가 총 69명이나 되었다. 직업을 보면, 농민이 76명으로 전체의 4분의 3을 차지하며 그 다음으로는 학생이 8명, 그리고 교사가 4명으로 많았다. 참여자들은 모두가 보안법을 위반한 가운데, 그 중 50명은 ‘소요죄’를, 18명은 ‘출판법’을 함께 위반하고 있었다. 참여자 중 가장 높은 형을 받은 이들은 총 5명으로 징역 3년형을 받았는데, 4월 1일 정안면 시위를 주도한 이기한을 제외하면 박준빈, 이승현, 황병주, 황연성 등으로 모두가 3월 14일 신상면 유구리 시장 시위에 참여한 이들이었다.
공주지역 3.1운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일반 농민들이 주로 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일본유학생 오익표, 안성호 및 영명학교 출신으로 서울에 거주하던 박장래가 국제 정세 및 3.1운동 소식을 전파하여 4월 1일 공주면 시위의 발생에 영향을 준 측면도 있긴 했다. 그러나 해당 공주면 시위는 사전에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시위당일 시장에서 배포한 뒤 만세운동을 전개하려 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정형성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위가 크게 확대되지는 못했다. 반면 참여자가 구체적으로 확인되는 3월 14일 신상면 유구리 시위나 4월 1일 정안면 시위 및 의당면 시위는 참여자 대다수가 농민이었고, 특히 신상면과 정안면 시위는 일제의 헌병분견소와 경찰관주재소를 습격·파괴하는 등 대단히 진취적이면서도 능동적인 시위로 귀결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한국인 대다수가 농민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놓고 보면, 공주지역의 3.1운동은 가장 보편적인 한국인들에 의해 추진․전개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국문 초록」
Ⅰ. 머리말
Ⅱ. 공주지역 3.1운동의 배경
Ⅲ. 공주지역 3.1운동의 전개
Ⅳ. 공주지역 3.1운동의 참여자 및 성격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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