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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성권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46호
발행연도
2019.8
수록면
219 - 256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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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상대적으로 약소국이었던 신라는 경상도 일원의 작은 나라였다. 이러한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하여 660년 백제를 무너뜨리고 668년 고구려의 평양성을 함락시켰다. 고구려 멸망이후 신라는 당나라와 전쟁을 치렀으며 676년 마침내 승리하였다. 나당전쟁의 승리 결과 신라는 대동강과 원산만 이남의 지역을 신라의 영역으로 확보하였다.
통일신라는 대동강과 원산만 이남의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했으나 구 백제 지역과 한강유역을 포함한 구 고구려 지역에 대한 신라의 지배 방식은 매우 달랐다. 구 백제 지역에 대한 신라의 지배는 백제 유민과 백제 지역 사람들을 신라 문화에 동화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반해 구 고구려 지역에 대한 신라의 지배는 군사적 관리 방식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신라의 점령지역 지배방식에 대한 차이는 통일신라시대 창건된 사찰과 불교미술의 분포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사찰은 삼국시대 이래 고급문화가 집결되는 장소이다. 구 백제지역인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는 통일신라시대 창건되거나 중창된 많은 수의 사찰과 사찰터가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의 경기도와 북한지역 일대에서는 신라에 의해 창건된 사찰의 분포비율이 낮으며 불교미술 또한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즉 구 고구려지역에는 통일신라 문화가 해당 지역에 깊이 습합되지 않았다.
불교미술은 삼국시대 이래 각 나라의 문화적 특성을 나타내는 역할을 하였다. 본문에서는 삼국과 통일신라시대 문화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불교미술과 유적에 대한 분석을 진행하였다. 백제 석탑의 분석을 통해 미륵사지 석탑, 정림사지 오층석탑이 백제문화의 표상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삼국시대 존재하지 않았으나 통일신라시대 들어와 처음 만들어진 이중기단의 삼층석탑과 비로자나불상 등은 통일신라문화권의 범위를 보여주는 아이콘이 될 수 있음을 밝혔다. 본문에서는 통일신라문화권의 북방한계선을 문화적 상징성을 갖고 있는 불교미술의 분포를 통해 파악해 보았다. 그 결과 통일신라문화권의 북방한계선은 속초-인제-홍천-횡성-원주-안성-평택을 잇는 선으로 설정할 수 있었다. 통일신라의 영토는 평양-원산만 이남지역이었다. 그러나 통일신라의 문화가 거주민들의 일상생활과 의식 속에 깊숙이 스며들었던 범위는 속초-원주-평택 이남지역으로 볼 수 있다. 맺음말에서는 통일신라문화권이 중부지역을 사선으로 가로질러 설정되는 배경과 그 의의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문화적 상징물로서의 불교미술
Ⅲ. 신라 불교미술과 신라문화권의 북방한계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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