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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민족문화연구 민족문화연구 제74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161 - 220 (6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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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밖 諸國 가운데 ‘이례적이게도’ 조선은 화이사상을 원안대로 수용·소비하여 스스로를 종족·공간 면에서 이적에 해당한다고 보면서도, 문화면에서는 이적의 세계에 매몰되지 않고 중국과 마찬가지로 ‘문명 중화’의 세계를 향유한다고 자부하였다(‘자신을 夷로 간주하는 화이의식’). 이러한 움직임은 동국에서 東人이 주체가 되어 보편인 중화 문명을 구현해 내고자 하는 차원에서였다. 조선에서 노정되는 ‘자신을 夷로 간주하는 화이의식’은 원 복속기 들어서 제후국 체제의 국내에서조차의 구현과 맞물려 출현한 이래로의 것이었다. 원 복속기 들어서 동아시아 역사상 최초인, 중국 밖 외국에서의 제후국 체제의 구현이 고려에서 이루어졌는데, 외국의 속성이 있기는 하면서도 전대와 달리 속국으로서 국내에서조차 제후의 위상이 관철되는 등의 중국과의 ‘混一’의 환경을, 고려의 유자 관료들은 동이(동인)가 주체가 되어 동이 세계(동국)에서 중국에서와 다를 바 없이 중화 문명(문화)을 추구·구현하는 식으로 해석·轉有하였고, 이렇게 되면서 원 복속기 고려에서는 화이의식을 원안대로 수용·통용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최초로 등장하였을 것이다. 다만 원 복속기 화이의식은 이후 시기에서와 달리 현실추수적 성격을 노정하였다. 현실추수적 성격이 강한 원 복속기 ‘자신을 夷로 간주하는 화이의식’은 소위 1356년(공민왕 5)의 ‘반원개혁’ 이후로 퇴색되어가다가 원·명 혁명과 이와 맞물린 대명사대를 전기로 하여 내향화되어갔다. 명의 대도 점령의 변화된 현실에 대응하여 고려 측이 비교적 신속하고 전격적으로 원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명에 사대한 조치는, 왕위를 심각하게 위협해 온 몽골과의 관계를 끊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 공민왕의 정치적 의지에서 비롯되었기는 하나, 일부 유자 관료들은 국제 환경상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흡수·전유해 가면서 ‘자신을 夷로 간주하는 화이의식’의 내향화를 이끌어 내었다. ‘자신을 夷로 간주하는 화이의식’의 내향화는 일부 관료들 내에서 시작하여 시간이 경과할수록 확산되어 종국에는 관료·지식인 세계에서 주도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게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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