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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중국소설학회 중국소설논총 중국소설논총 제56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27 - 155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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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병장수는 인간의 오랜 욕망이다. 의술이 발달한 지금이나 그렇지 않았던 과거에나 사람들은 병 없이 오래살기를 바랐다. 그래서 천하를 통일했던 진시황은 서불을 삼신산으로 보내 불로초를 구해오게 했고, 팽조는 800살을 살고도 멀리까지 침을 뱉어 일찍 죽게 되었다고 후회했으며, 현대에는 장생불사의 꿈이라 할 냉동인간까지 탄생하게 되었다. 이렇듯 사람은 늘 무병과 장수에 대해 고민했고, 이에 관련된 인간의 몸과 정신에 대한 연구는 의학의 이름하에 의학지식과 기술의 발전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이 경우는 의학지식이 진료과정에서 실제 어떻게 사용되고, 이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기가 어렵다. 본 연구는 바로 이 점에 착안하여 《우초신지》와 《열미초당필기》에 나타난 의원들의 의료행위와 의학적 지식, 치료 과정을 통해 나타난 의원의 품성, 치료과정을 바라보는 당시 환자들의 시선을 통해 의학이 당시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명말청초 의학의 가장 큰 특징은 송원금대의 국가주도하의 의학 발전 즉 의학의 정치적 기능이 약화되고 지식인들 주도하의 의학이 발전했다는 점이다. 명나라 말기에 이르면 나라는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결국에는 이민족의 통치를 받게 되었고, 당시 지식인들은 유교의 사대부 문화 질서가 이민족 지배에서도 지속될 것인가? 라는 물음 아래 학문적, 도덕적 책임에 대한 자기반성을 하면서 은거하거나 의학의 길로 빠져들었다. 반면 질박함을 생활의 규범으로 삼았던 청초 제왕들은 근검, 붕당의 폐해, 예의 중요성을 들어 명대 문화를 비판하는 동시에 전대의 문화를 정리, 보존한다는 명분아래 《사고전서》 등의 대형서적을 편찬하면서 많은 한족 지식인들을 불러 들여 고증학을 발달시킨다. 의학 역시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지식인들은 전대에 전해오는 민간요법이나 의료 상식 등을 기록으로 남겨두었고, 이를 읽은 지식인들은 직접 병을 치료하면서 그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으로 남겨 두게 되었다. 따라서 이 시대의 사람들은 병이 나면 의원을 찾기 보다는 직접 방서나 책을 뒤져보면서 치료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워졌다. 그리하여 명말청초에는 전대 의학지식의 선두에 있었던 유의(儒醫)의 활동이 대폭 줄어든 반면 도의(道醫)의 활동이 많았고, 돌팔이 의사 즉 용의(庸醫)에 대한 고발 내용이 많아졌다. 또한 의원들에 의한 의학지식의 전파보다는 책이라는 물적 전파자를 통해 중요한 민간요법이 널리 알려졌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명말청초의 의학은 전대와는 달리 생활화되었고, 병을 치료하면서 얻은 자신의 경험을 적다보니 치유과정이나 의약에 대한 기록이 전대에 비해 훨씬 구체화되었으며, 또한 부족한 자료는 고증을 통해 책으로 출판하는 등 많은 의학서적을 자료화시킴으로써 동시대의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대중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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