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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보훈학회 한국보훈논총 한국보훈논총 제18권 제3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85 - 105 (2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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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남해안 지역에서 일어났던 3·1운동을 고찰하고, 그 특성을 찾아보았다. 또 3·1운동 2개월을 보다 입체감 있게 살펴보고자 4개 시기(개시, 파상, 절정, 퇴조)로 구분한 임경석의 시기 구분법을 차용했다. 4개 시기 가운데 첫 번째 시기는 3월 1일부터 9일까지의 ‘개시 국면’이다. 남해안 지역에서는 3월 9일까지 만세 시위가 벌어지지는 않았고, 다만 통영에서 기독교인 20명이 만세 시위를 기도하다가 체포되었다. 두 번째 시기는 3월 10일부터 27일까지 보름 넘게 이어졌던 ‘파상국면’으로 3·1운동이 널리 확산되는 과정이다. 이 단계에서 가장 먼저 3·1운동이 전개된 것은 부산부 일신여학교 학생들이 주도한 시위였다. 마산부와 창원군·하동군 시위 군중수는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파상국면에서는 21개 행정구역 가운데 13개 행정구역에서 3·1운동이 발생했다. 3월 하순부터 3·1운동은 ‘절정 국면’으로 접어들어 4월 8일까지 지속되었다. 이 시기 남해안 지역 3·1운동에서도 시위 발생 지역이 넓어지고, 횟수도 늘어났다. 또 4월 6일에 사망자가 나왔다. 4월 2일 통영 시위에서 어민이 시위 주동자가 되고, 4월에 여수와 고흥에서 어선 태극기 시위가 출현한 것, 또 여수와 장흥에서 해변 마을 횃불 시위가 벌어진 것 등은 바닷가라는 남해안의 지역적 특수성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도시지역인 목포부에서는 학생 동원이 주목되는 점이다. 이 시기에는 남해안 21개 행정구역 가운데 15개 행정구역에서 시위가 있었다. 시위 군중에 대한 무차별 살상을 불사한 일제의 폭력적 대응으로 인해 3·1운동은 4월 9일부터 4월 말까지 퇴조 국면’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 단계에서는 남해안 21개 행정구역 가운데 7개 행정구역에서 시위가 벌어졌거나 기도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인 1919년 연말과 1920년 상반기에도 남해안 지역 3·1운동이 이어졌다. 여수·완도·진도·해남 등 모두 전남 지역에서 일어났다는 특징이 있다. 전근대 시기 멸시 받았던 바닷가 사람들, 특히 남해안 지역민은 3·1운동 시기에 침묵하지 않고, 또한 ‘전 민족적’이란 수식어에 맞게 ‘독립’을 위해 적극 투쟁했다. 남녀, 노소, 빈부, 귀천을 망라한 전국적, 거족적 독립운동이었던 3·1운동에 뒤처지지 않았다. 이러한 참여는 결국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민주공화국임을 표방하게 한 요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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