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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권민균 (부경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15집
발행연도
2020.6
수록면
1 - 30 (30page)
DOI
10.52271/PKHS.2020.06.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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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지역은 漢이 郡縣을 설치하기 이전에 月氏, 강, 흉노 등 이민족이 거주한 지역이었다. 한이 지배하면서 많은 한인이 이곳에 옮겨와 살게 되었다. 이후 漢은 敦煌과 그 이서지역에 郡縣 혹은 屯田, 郵·驛·置 등을 설치하여 漢의 문서 행정력이 미치는 공간으로 포괄하고자 했고, 이를 통해 내지의 통치시스템이 이 지역에서도 구현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漢의 이러한 바람과는 달리 漢이 통제력 정도를 높일 수록 통제에 대한 저항이 상존했다. 屯田을 설치하여 지배력을 높이려 했지만 현지인의 반발만 불러 일으켰을 뿐이다. 게다가 현지인이 사는 곳에 漢의 죄수를 이주시키는 데 대한 반발도 상당히 컸을 것으로 생각된다. 過所의 통행도 엄격히 통제된 것 같지 않다. 통행증이 필요한 관소에서는 기본적으로 정해진 문서를 처리하고 전달하는 업무와 서역이 바친 봉헌물을 점검하는 업무 외에 출입에 필요한 엄격한 심사를 진행한 사례가 일반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대신 西域 使者에 대해서는 漢 관리에게 동행하게 하였고, 使者와 동행하는 인물에 대해서도 ‘貴人’으로 기록했을 뿐 어떠한 목적으로 漢에 입경하는지 기록이 없어, ‘貴人’이 어떤 목적으로 입경한 것인지 알기 어렵다. 대신 이들인 반입하는 물건 즉, 낙타나 말 따위에 대해서는 철저히 점검하고 관리 한 것으로 보인다. 말과 낙타의 이름과 키, 나이를 기록했고, 어떠한 질병이 있는지도 검사했다. 만약 이들 봉헌물이 사망하기라도 하면 사망 원인을 따지기 위해 여러 사람이 입회하여 사망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이처럼 이 지역에서 발견된 出土資料에 따르면 돈황 지역은 漢이 專有하고자 했지만 전유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現地人과 西域人 그리고 漢人이 거주하고 왕래한 共有의 공간이었다. 烏孫·莎車·康居 등 서역 여러 나라의 사신과 상인이 文書와 異物을 가지고 왕래했고, 이전부터 이 지역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羌人의 경우 漢의 군현으로 예속된 이후에도 敦煌에 그대로 정착해 거주했다. 漢은 名籍을 구비하여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漢 변군지배 하에서 敦煌지역은 정세적으로 늘 불안하기는 했지만, 한에 의해 폐쇄되어 통제되던 공간이라기보다는 漢 지배 하에서 상당히 이완되고 낮은 수준의 통제력이 행사되던 지역으로 볼 수밖에 없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漢의 郡縣 설치 이전의 敦煌
Ⅲ. 漢의 敦煌郡 설치와 漢人의 流入
Ⅳ. 漢代 ‘境界空間’ 敦煌의 성격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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