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온지학회 온지논총 온지논총 제61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23 - 157 (35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1644년 청나라가 북경으로 천도하면서, 대청사행의 최종 목적지는 심양에서 북경으로 연장되었다. 1637년 대명사행 이후 8년만에 북경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육로 북경 사행의 부활이었다. 그 첫해에 갔던 사절들은 개인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1645년 사행에 참여했던 정세규, 성이성 등은 풍부한 개인 체험과 감회, 그리고 명실상부한 명청교체의 외교적 현실을 사행록에 담았다. 대청 북경 사행은 이동 경로를 비롯하여 외견상으로는 대명 북경 사행과 닮아 있으나, 청나라의 일방적인 요구와 제도로 조선 사절단의 당혹감과 반발이 노출되기도 하였다. 특히 사신들의 이동과 숙소 체계는 복원이라기 보다는 갱신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장기간에 걸친 명청교체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역에 제국 경영을 위한 만주족의 이주와 조선 포로들의 정착, 한족들의 이주가 이루어지면서 사행 노정이 지나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재편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정세규와 성이성은 만주족, 한족, 조선인 포로들로 이루어진 현지 주민들과의 접촉을 통해 슬픔, 분노, 혐오, 동정, 체념 등 여러 감정을 표출했다. 뿐아니라 사행단의 정사인 인평대군, 귀환 길의 봉림대군에 대해서도 풍부하게 서술하고 있어, 후대에 대명의리론이나 숙종 이후 격화된 당쟁으로 고착화된 이미지와 다른 본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