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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각사상연구원 대각사상 대각사상 제32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37 - 173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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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에 관한 지금까지의 연구는 대부분 창건기에 집중되어 있다. 이 글은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근대 이후 불국사의 역사와 사격이 주제이다. 1910년 주권을 상실한 시기부터 1970년대 가람의 복원과 중창, 그리고 수행과 전법도량으로 거듭나기까지의 수행자들의 노력과 역사를 살펴보았다. 불국사는 호국사찰의 사격을 지니고 출발하여 고려, 조선시대에도 변함없이 계속되었다. 시대에 따라 화엄종과 유가종 등 소속 종단은 변하였지만 창건의 정신은 변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억불의 기조에서도 호국사찰로서의 사격이 중시되어 중건이 이어졌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사세가 기울고 가람이 퇴락하면서 절의 사격은 희미해졌다. 근현대 들어 일제의 사찰령하에서 30본산에 소속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절의 쇠락이었다. 20세기 초 절은 황폐한 무주공산의 지경이었다. 오랜 역사와 전통, 사격은 무너진 가람과 함께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심지어 본산 기림사 체재에서 수반말사(首班末寺)도 아닌 일반 말사로 편제되었다. 불국사가 사격을 본격적으로 회복하기 시작한 때는 1938년을 전후한 시기이다. 본산 기림사와 지역인사들이 힘을 모아 본산승격 청원을 개시하였다. 1936년 거액의 국고가 지원되어 가람을 중수하였고, 석존제를 거행하는 등 활발한 사회적, 불교적 활동을 전개하였다. 관광지로서 큰 인기를 누리는 가운데 가람의 중수와 법회활동을 통한 자신감으로 본산승격을 청원하였다. 1959년 불교정화의 과정에서 비구측은 24개의 수사찰을 확보하였다. 이때 불국사는 수사찰이 되어 비로소 경북을 대표하는 사찰로 공식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1962년에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제11교구 본산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이후 1969∼1973년에 이르는 4년간의 대복원불사를 완성하여 발전의 터전을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외형적 토대를 바탕으로 강원과 선원을 설립하여 도제양성과 수행도량으로서의 본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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