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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형아 (국방부) 정창원 (제주대학교)
저널정보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논총 동북아역사논총 제70호
발행연도
2020.12
수록면
185 - 224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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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바와 같이 장제스와 이승만은 냉전 초기 동아시아 반공의 파트너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인사들이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장제스와 관계를 유지해 온 것에 비해 주로 미국에서 활동했던 이승만은 장제스와 교류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이승만은 1945년 유엔창립총회 기간 샌프란시스코에서 주미대사 구웨이 쥔, 주한 대표를 지낸 샤오위린과 접촉하였다. 당시 이승만은 한국 대표단의 유엔창립총회 참석을 거부한 미 국무부 인사들이 친공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또한 그는 얄타에서 미국이 한반도를 소련에 넘기기로 했다는 등의 직설적이고 저돌적인 발언으로 미 국무부와 마찰을 빚었다. 당시 중국 측 인사들은 미국과도 마찰을 빚고, 또한 재미 한인 단체들과도 갈등을 보이는 이승만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갖지 못하였고, 그를 반공주의자라고 장제스에게 보고하였다.
한국에서 미군정의 수장 하지와 갈등을 빚던 이승만은 한국정부의 조속한 승인을 연합국에 호소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였다. 그러나 이승만의 방미는 성과가 없었을 뿐 아니라 미국 측과 더 깊은 갈등의 골을 만들었다.
귀국길에 이승만은 중국의 장제스를 방문하겠다는 뜻을 전하였다. 방문 목적은 한국 독립에 대한 장제스의 지지를 통해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려는 것이었다. 이승만의 방문을 앞두고 중국 측 인사들은 이승만이 고집스러운 반공주의자라고 보고하였고, 미국과 오해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승만을 멀리해야 한다고 건의하였다. 그러나 직접 이승만을 만난 장제스는 이승만의 기백과 반공의지를 높이 평가하였다.
그래서 김구에게 약속한 20만 달러 중 10만 달러는 임시정부 주중 대표단에 지급하고 남은 10만 달러를 이승만에게 제공하라고 지시하였다. 이 돈이 최종적으로 이승만에게 전달되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장제스의 이러한 지시와 더불어 이승만과 협력하라고 김구에게 조언하는 모습을 보면, 장제스는 꼭 김구가 아니더라도 이승만을 통한 친중정부를 수립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더 나아가 이승만을 이후 동아시아의 반공 파트너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 같다. 1947년 이승만과 장제스의 짧은 만남은 이후 냉전 초기의 혈맹관계로 나아가는 첫 단추가 되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유엔창립총회 기간 중국인사와 이승만의 접촉
Ⅲ. 장제스의 친중정부 수립 구상과 이승만의 방중 배경
Ⅳ. 이승만의 방중과 정치 자금 지원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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