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문기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42권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29 - 95 (67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의 목적은 국채보상운동 초기, 발상지 대구지역의 전개 양상을 재검토하여 선행연구에서의 미비점을 수정?보완하는데 있다. 본 연구를 통해 새롭게 밝혀진 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07년 1월 29일 서상돈의 국채보상 발의는 ?취지서?로 작성되어 전국적으로 배포되었다. 종래에는 ?취지서?가 1종만 작성된 것으로 보았지만, 사실은 1월 말에 작성된 ?1차 취지서?와 이를 윤문?교정하여 2월 상순에 다시 작성한 ?2차 취지서?의 2종이 있었다. 둘째, 발의와 취지문의 배포에도 불구하고 국채보상운동에 큰 진전이 없자, 대구의 운동 추진세력은 운동 전담 단체를 새로 조직하고, 대규모 군중집회의 개최를 준비하였다. 이에 따라 새로 조직된 단체는 ‘대구금연상채회’와 ‘대구민의소’였는데, 이들은 국채보상운동을 전담하는 단체로서는 전국 최초로 조직된 것이었다. 이 가운데서 ‘대구민의소’는 대구군민대회를 주최?진행하기 위한 만들어진 실행단체였으며, ‘대구금연상채회(얼마 후 ’대구단연상채회‘로 개명됨)’가 대구지역의 국채보상운동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갔던 핵심 단체였다. 셋째, ‘대구민의소’는 두 번에 걸쳐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였는데, 이 두 번의 군중집회는 이후 대구의 국채보상운동을 활성화하고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넷째, 대구는 여성들이 전국 최초로 국채보상운동에의 참여를 밝혔던 장소인데, 종래에는 활동의 중심에 ‘남일동패물폐지부인회’가 있다고 이해하였다. 그러나 이는 정식 단체가 아니며, 실제로 대구에서 여성들의 국채보상운동을 이끌었던 단체는 그 정신과 방법론을 계승한 ‘대구남산국채보상부인회’였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