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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우재병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85호
발행연도
2021.11
수록면
37 - 69 (33page)
DOI
10.21490/jskh.2021.11.8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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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전엽, 일부 백제서남부지역 수장묘로 채용된 전방후원분은 백제가 채용한 최초의 왜 무덤양식은 아니다. 이미 5세기 후엽부터 백제는 원통 하니와(埴輪)를 이용하는 왜의 무덤양식을 채용하였다. 또한 6세기 전엽경 무령왕과 왕비의 목관을 비롯하여 백제 권력층의 목관재로서 왜산의 최고급 목재인 금송이 많이 사용되었다. 백제 중앙에 의해 수입된 이들 목재는 지방의 고위 수장층에게도 재분배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 전방후원분의 채용과 더불어 왜산 최고급 목관재의 재분배는 고구려의 위협을 저지하기 위해 왜와의 외교관계 강화를 대외적으로 강조하기 위한 무덤을 이용한 외교전략의 일환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6세기 전엽, 왜 중앙지역 왕과 권력층은 백제 중앙양식 묘실이라는 새로운 횡혈식석실을 채용한다. 또한 이들 왜 중앙지역의 왕과 권력층의 백제 양식 횡혈식석실에서는 백제에서 수입된 것으로 보이는 화려한 무기 등 위신재가 출토된다. 왜 중앙은 백제에서 수입한 이들 위신재를 중앙 권력층에게 재분배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왜 중앙지역 이노우치이나리즈카(井ノ内稲荷塚)고분과 쇼후쿠지(勝福寺)고분에서 출토한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대도 장식품은 왜 중앙에 의해 백제에서 수입되어 이들 권력층에게 재분배된 위신재로 추정된다. 이들 고고학적 자료는 5세기 후엽~6세기 전엽경 백제와 왜 사이에서 강력한 친왜・친백제 외교정책이 실행되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증거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무령왕대 전후의 백제와 왜 사이 교류의 변화
3. 게이타이(繼體)왕대 왜 중앙의 백제양식 횡혈식 석실과 출토 유물로 본 백제와 왜
4.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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