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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호준 (충청북도 문화재연구원)
저널정보
동아시아고대학회 동아시아고대학 동아시아고대학 제60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367 - 404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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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삼별초의 진도와 제주도 抗蒙遺蹟에 대한 발굴조사 종합보고서와 이에 대한 연구성과가 축적됨에 따라, 삼별초가 제주 항파두리성을 축성 하였을가? 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작성하였다. 삼별초는 무인정권의 몰락에 이은 1270년 삼별초의 해체를 통해 새로운 대몽항쟁이 벌어지게 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그들이 고려정부에 맞서 진도 및 제주도에까지 내려갔고 진도 용장성과 제주 항파두리성․환해장성 등의 항몽유적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도 항몽유적은 해도에 입지한 지리적 이점과 전략적 가치를 갖고 있으며, 강화도와 진도와 같이 都城 계열의 성곽과 같은 배치구조를 보인다. 최근 강화도 강화중성과 제주도 항파두리성 외성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축성방식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고고학자료가 제기되었다. 이는 항파두리성의 외성과 내성 건물지 등이 고려 江都政府의 영향권 아래에서 제주민이 조성했을 가능성이 있다. 필자는 대몽항쟁기 초기부터 실시된 ‘海島入保’와 江都정부의 ‘海島再遷論’ 전략과 연계하여 제주도 항몽유적의 축조시기를 검토하였다. 그리고 삼별초가 진도에 웅거하기 이전 고려 고종 30년(1243) 경에 진도 용장성을 축성했다는 고용규의 연구성과와 함께 1264년에 제기된 ‘해도재천론’의 대상지에 제주도가 포함되어 있다는 강봉룡의 연구를 바탕으로 삼별초가 제주도로 입도 이전에 항파두리성도 축조되었을 개연성을 검토하였다. 이와 더불어 필자는 항파두리성 내성 건물지의 도자기류와 기와류는 12~14세기의 편년을 보이고 있어, 삼별초가 제주도에 입거하기 이전의 유물이 공존한다는 것에 주목하였다. 특히 기와류는 제주도에서 제작했던 과학적분석으로 보아 항파두리성 축조 이전에 제주도의 다른 유적에서 유입된 것과 자체적으로 제작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삼별초의 제주도 항몽유적은 삼별초가 제주도로 입거하기 이전부터 江都政府에 의해 구축되었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이 합리적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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