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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전덕재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日本學硏究 日本學硏究 제67권
발행연도
2022.9
수록면
10 - 44 (35page)
DOI
http://dx.doi.org/10.18841/2022.6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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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는 8-9세기 신라와 발해, 일본의 자아 인식과 이들 사이의 타자 인식에 대하여 살핀 것이다. 일본 율령국가는 신라와 발해를 蕃國으로 인식하고, 蝦夷와 隼人, 南島人을 夷狄으로 대우하였다. 8세기에 일본은 天皇을 정점으로 自國과 蕃夷를 모두 아우르는自國 중심의 독자적인 천하관(세계관), 즉 小帝國主義的인 국제질서를 구축하였다. 신라는 당나라의 蕃國으로 자처하면서도 한때 報德國과 耽羅 또는 渤海와 耽羅를 屬國으로 거느리는 자국 중심의 천하관을 구축하였다. 8세기에 신라는 일본을 隣國으로 대우하였는데, 이때 신라인은 自國을 王城의 위상을 지닌 국가로 인식하며 중국과 거의 대등한 유교문화를 발전시킨 문화선진국, 즉 君子國이라 자부하고, 일본은 문화적으로 낙후된 夷狄國家로 폄하하였다. 733년에 신라가 발해를 침략한 이후 두 나라는 한동안 적대관계를 유지하였고, 8세기 중반부터 신라는 발해를 抗禮의 隣國으로 대우하였다. 신라인들은일본과 마찬가지로 발해도 문화적으로 낙후된 夷狄國家로 폄하하며 자존감을 드러냈다. 발해는 대외적으로 당나라의 蕃國으로 자처하면서도 대내적으로 皇帝國體制를 지향하였다. 또한 주변의 靺鞨 部族을 蕃國으로 거느리는 자국 중심의 독자적인 세계관을 정립하였다. 발해는 8세기 중반 이후부터 신라를 抗禮의 隣國으로 대우하면서도 국제무대에서 서로 경쟁하면서 교류하였다. 발해는 신라와 마찬가지로 일본을 대등한 관계의 隣國으로 대우하였는데, 이것은 발해와 일본 사이를 舅甥關係라 주장하거나 발해왕이 일본 천황에게 보낸 國書를 啓라 불렀던 사실을 통해 입증할 수 있다. 일본은 신라와 발해를蕃國으로 인식한 반면에, 신라와 발해는 일본을 抗禮의 隣國으로 대우하는 일본과 신라, 일본과 발해의 同床異夢은 현실에서 외교적 마찰과 충돌로 비화되었다. 통일신라기신라의 자아와 타자 인식은 전근대 우리나라의 대중국・일본 인식의 淵源이 되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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