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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성주 (강원대학교)
저널정보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 독도연구 독도연구 제31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137 - 171 (35page)
DOI
https://doi.org/10.31347/dokdo.2021.0.3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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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정기적인 수토제(搜討制) 실시는 1694년(숙종 20) 장한상(張漢相)의 울릉도 수토로 시작되었다. 수토사(搜討使)들은 자신들이 다녀간 흔적을 남기기 위해 각석문(刻石文)을 남겼는데, 수토(搜討)의 가장 확실하고 직접적인 증거이다. 그동안 단편적으로 울릉도 수토 각석문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아직 종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대략적인 현황만을 파악할 수 있었다. 본고에서는 그동안 수토 각석문의 조사와 연구 현황을 종합하여 비교·검토하고, 현재까지 발견된 각석문의 내용을 비교 검토하는 동시에 그 특징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1711년(숙종 37) 박석창(朴錫昌)이 남긴 ‘울릉도 도동리 신묘명 각석문’은 수토제 시작 후 불과 17년이 지난 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그가 남긴 울릉도도형(鬱陵島圖形)에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또 그의 울릉도도형에는 ‘각석입표소(刻石立標所)’를 표시하였는데, 이 표시는 이후 제작된 조선 후기 지도에 동일하게 그려져 있다. 따라서 박석창의 각석문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울릉도 수토 각석문 중 가장 오래된 것일뿐만 아니라 울릉도 수토 각석문 중 최초의 것일 가능성도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울릉도 수토 각석문은 크게 8개로 볼 수 있으며, 시기적으로는 1700년대 2개, 1800년대 5개, 1900년대 1개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분류하면 서로 다른 14명의 각석문으로 나눌 수 있다. 지역별로는 서면 태하리에 4개 8명, 울릉읍 도동에 3개 4명, 북면 현포리에 1개 2명의 각석문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은 총 4개 7명의 각석문으로 발견된 수의 50%에 지나지 않는다. 울릉도의 개발 등으로 행방불명되거나 마모가 심해 판독이 어려운 각석문이 다수가 존재한다. 또한 울릉도 주민들의 증언에는 각석문이 수없이 많았다고 하고 있으므로 추가적인 각석문이 발견된 가능성이 있다. 울릉도 수토 각석문에는 수토관(搜討官)뿐만 아니라 수토사에 참여하였던 다양한 사람들의 직명(職名)과 이름이 새겨져 있다. 각석문에 남아있는 직명 등은 문헌 자료와의 비교 검토를 통해 수토사의 규모나 구성 등을 파악하게 해 줄 것이다. 각석문은 조선시대 울릉도 수토와 독도 수호 노력의 직접적 증거이므로 이에 대한 추가 조사 및 종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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