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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문준일 (원광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유럽발칸연구소 동유럽발칸연구 동유럽발칸연구 제47권 제2호
발행연도
2023.5
수록면
3 - 27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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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에르막(Ермак)이 시베리아 원정을 떠난 이후, 17세기 전반부에 이미 러시아는 오호츠크해에 도달하였다. 이 과정에서 포야르코프(В. Поярков)와 하바로프(Е. Хабаров)가 이끈 원정대는 프리아무리에(Приамурье) 지역의 광대한 영역을 조사하였고, 그 영토를 복속시키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이러한 팽창은 진출의 길목에 있던 중국과의 충돌을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1689년 중국과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어 국경선을 정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러시아는 아무르강 유역에 대한 영유권을 상실하게 된다. 이후 극동에서의 러시아 국제정치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네르친스크 조약 이후 잃어버린 아무르 연안 지역에 대한 회복이었다. 러시아 정부는 1689년 이후 수차례 중국과 보다 정확한 국경선을 확립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중국과의 무역 중단이라는 위협이 상황을 어렵게 하였다. 아무르강은 시베리아 내륙에서 태평양 연안으로 빠져나가는 유일한 통로이다. 하지만 시베리아 내륙과 태평양을 연결시킬 수 있으려면 아무르강 하구 지역에서 선박의 운항이 가능해야 한다. 태평양에서 아무르강 하구를 통해 항해를 할 수 있어야 교통로로서의 기능을 가지기 때문이다. 19세기 네벨스코이의 탐사 이전까지 몇 번의 탐사가 내린 결론은 아무르강 하구는 항해가 불가능하며 사할린은 반도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에 의문을 품은 젊은 장교 네벨스코이는 정부의 허가 없이 독단적 탐사를 진행하고 결국 기존의 결론을 뒤집는 발견을 하게 된다. 이 논문은 러시아의 시베리아 진출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네벨스코이의 아무르 탐사의 과정과 내용을 살펴보고 그 의미를 도출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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