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이슬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중부고고학회 고고학 고고학 제22권 제1호
발행연도
2023.4
수록면
111 - 141 (31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글은 조선 후기 청화백자의 확산 시점을 서울 종로 일대 유적의 고고학적 층위를 통해 분석하고, 그배경을 당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기존의 조선 후기 청화백자에 대한 연구는 문헌기록과 전세품, 그리고 일부 생산유적에서 수습된 유물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을 뿐 고고학적 출토 사례를 활용한 연구는 부족하였다. 이에 본고는 고고학적 층위별로 출토된 청화백자를 기준으로 당시 관요로 운영된가마터 출토품과 비교하여 문화층의 시기를 구분하며 청화백자의 확산 시점을 재검토하였다. 그리고 청화백자의 생산이 증가한 배경을 수요와 제작 기술을 통해 살펴보았다. 서울 종로 일대는 조선 시대 중심지로 이 일대 유적의 발굴조사 결과 18∼19세기에 제작된 청화백자는조선 후기 문화층인 Ⅱ·Ⅲ·Ⅳ층에서 확인되며 특히 Ⅱ·Ⅲ층에서 많이 수습되었다. 청화백자의 기종은일상 기명인 발·잔·접시 등이며, 문양은 ‘壽’·‘福’자문, 화문, 초화문 등 다양하게 시문되었다. 그중‘壽’·‘福’자문은 층위별로 글씨체, 원권문 등 특징이 다르게 나타난다. 출토 청화백자를 당시 관요로 운영된 금사리, 분원리 요지의 것과 비교 분석해본 결과, Ⅱ층은 분원리 양식인 기벽이 두껍고 사선형으로 올라가며 굽 안쪽이 외측보다 깊게 깎은 수직굽인 것들이 주를 이룬다. Ⅲ층은 얇은 기벽에 양감 있는 금사리 모습과 초기 분원리 양식인 굽 안쪽을 외측보다 깊게 깎은 수직굽의 형태가 동시에 확인된다. Ⅳ층은 기벽이얇고 외반 구연을 갖춘 금사리 특징이 나타난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 보면, Ⅱ층은 19세기∼일제강점기, Ⅲ 층은 18세기 중반∼18세기 후반, Ⅳ층은 17세기∼18세기 중반으로 구분할 수 있다. 결국 17세기 중반 이후청화백자의 생산이 재개되었지만, 본격적인 생산이 시작된 시점은 상업 발달 등 시대적 상황과 연관지어 18세기 중반으로 볼 수 있다. 이후 19세기가 되면 청화백자의 생산량은 최고치에 이르게 된다. 18∼19세기 청화백자의 생산이 증가하게 된 배경은 상품화폐경제의 발달로 청화백자의 수요층이 이전보다 늘었기 때문이다. 사번이 허용되면서 청화백자 등 고급 기명들이 시중에 다량으로 널리 유통되었다. 청화백자의 수요가 날로 증대해지자 관요에서는 기술적으로 변화를 시도하였다. 이는 먼저 청화백자의 안료인 회회청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갑발, 번조 기술, 굽 받침법 등 제작 기술이 시기에 따라변화하였다. 금사리, 분원리 시기가 되면 새로운 형태의 갑발이 등장하고 분원리 시기일 때 갑발을 포개쌓아이전에 비해 청화백자의 많은 양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양질, 조질백자에 따라 굽 받침법이 모호해지고 원료의 사용법 변화 등으로 인해 양질백자의 품질은 떨어졌으나 이것은 대량생산의 요구로 인한 변화로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