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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태호 (명지대학교)
저널정보
명지대학교 문화유산연구소 미술사와 문화유산 미술사와 문화유산 제4집
발행연도
2016.2
수록면
71 - 105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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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한양 그림과 도성도는 서울 지세의 수려함을 잘 보여준다. 조선 후기 사회와 정치경제, 문화예술의 기틀이 잡히는 시기인, 18세기 중후반 영조ㆍ정조 시절 이후에 예술성 높은 도성그림 걸작이 창작되었다. 도성도의 형식적 완성은 역시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의 진경산수화 이후의 일이다. 1750년경의 <경도5부도(京都五部圖)>(서울대학교 규장각)와 <도성대지도(都城大地圖)>(서울역사박물관), 1788년경 <도성도(都城圖)>(서울대학교 규장각), 1800년대 초 <한양도성도(漢陽都城圖)>(삼성미술관 리움) 등 궁중 화원이 그린 회화식 도성도에 정선의 진경산수화풍이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이들 18세기의 권위적 도성도 형식은 19세기 고산자 김정호(古山子, 金正浩)의 <수선전도(首善全圖)>류로 이어졌다. 김정호류의 수선전도는 근대식 축척지도가 출현하는 20세기 초까지 큰 변화 없이 복제되면서 유행하였다. 한편 19세기에는 조선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와 맞물리며 새로운 회화식 도성도 형식이 탄생하기도 했다. 《동국여도(東國輿圖)》첩에 포함된 <도성도>(서울대학교 규장각)와 같은 민간화가의 시선이 담긴 산수표현과 도성주민들의 마을을 표시한 지도가 출현한 것이다.
또한 19세기 전반 경 <한양전경도(漢陽全景圖)>(국립중앙박물관)는 북쪽의 산세 아래 30만 주민이 사는 6만여 민가로 가득한 한양 전체, 대경(大景)의 감명을 담은 진경작품이다. 앞서 살펴본 동시기 《동국여도》첩의 <도성도>와 민가가 등장한다는 측면에서 유사점을 가지면서도, 지도의 성격과 완연히 다르다. 도성도와 더불어 한양 그림에 민가의 등장은 조선 후기 사회에 움튼 근대적 변화를 읽게 해준다.
서울전경의 아름다움을 담은 그림은 19세기 중반 이후 20세기 전반까지 그려지지 않았던 듯하다. 근 100년간 현존하는 작품 사례가 없다시피 하다. 조선 말기에서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지난한 역사에서 서울사람들조차 서울 경치가 눈에 들리 없었던 탓 일게다. 해방되고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야 안정을 찾으면서, 1950년대 중후반 서울의 아름다운 풍광이 이응 노, 박노수 등 몇몇 화가들에 의해 되살아났다.

목차

시작하며
Ⅰ. 17-18세기 회화식 도성지도 형식 변천
Ⅱ. 18세기 도성도와 정선의 진경산수화
Ⅲ. 19세기 도성도의 두가지 유형
Ⅳ. 19세기 새로운 산수형식의 한양전경도
마치며 : 20세기 중반 서울 풍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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