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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경현 (문화재청)
저널정보
인물미술사학회 인물미술사학 인물미술사학 2015 / 제11호
발행연도
2015.12
수록면
163 - 201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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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촌 윤용구는 왕실의 일원으로 고종이 추진했던 개화정책을 적극 도왔던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1910년 이후에는 장위동의 은일지사로 시서화 창작활동에 전념하며 자신의 신념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문인화가로 변신하였다. 본고에서는 현전하는 윤용구의 〈사군자〉 병풍 6점을 집중적으로 비교 분석하여 이를 근거로 윤용구의 창작시기를 입문기, 모색기, 확립기의 세 시기로 구분하는 시도를 하였다.
서화 입문기는 1894년 11월 궁내부대신 사직부터 1910년 경술국치까지이다. 이 시기에 윤용구는 사직과 출사를 반복하였으며, 관직에서 물러났을 때에는 장위동에 머물며 서화를 그리기 시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제작된 〈사군자〉 병풍 3점에 포함된 묵란도는 『개자원화전』을 임모하거나 정섭, 금농, 이하응, 김응원 등의 묵란도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한 그림을 그리기 직전의 준비과정이나 심정을 토로한 제시들은 입문기의 정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모색기는 독자적 화풍을 추구했던 때로 장위동의 은일지사가 된 1910년부터 1920년대 중반까지로 설정하였다. 1910년대에 그려진 〈묵란도〉 1점은 제작시기가 알려진 유일한 예로 이 시기의 기준작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인적이 드문 곳에서 자라는 난의 자연 상태를 그린 것으로 윤용구의 독창적인 표현이며, 입문기부터 석촌양식의 확립기까지 그려지고 있어 각별한 애정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군자〉 12폭 병풍은 이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묵란도는 변화의 폭이 크지 않은 반면, 괴석도에서는 독창적인 화법을 적극 모색하였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확립기는 ‘석촌양식’이 완성된 1920년대 중반 이후로 설정하였다. 이 시기에 그려진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의 〈사군자〉 병풍에 있는 묵란도는 난이 자라는 자연 상태의 모습을 다양하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충성심과 절개를 지켜낸 은일 지사 윤용구의 삶과 인적이 드문 곳에서 향기를 발하는 난의 생장을 동일시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확립기의 묵란도에서 난이 자라는 장면을 주로 그려진 것은 윤용구 자신의 은거를 시각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이 시기의 제시에서 언급한 굴원, 공자, 소식 등은 시대적 배경과 상황은 달랐지만 지조와 절개를 지켜낸 인물이라는 점에서 윤용구가 묵란도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상징적 의미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윤용구의 묵란도, 묵죽도, 괴석도는 망국이라는 절대적 역경 속에서도 일본에 굴복하지 않는 지조와 절개,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청빈한 기개를 소중하게 여겼던 윤용구의 삶 그 자체를 이차원의 평면 위에 그려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그의 사군자와 제시는 항상 동일한 의미를 담아내고 있어 문인화가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목차

Ⅰ. 머리말
Ⅱ. 20세기 전반 한국 화단의 묵란도
Ⅲ. 윤용구 묵란도의 전개와 특징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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