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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위가야 (성균관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94호
발행연도
2019.6
수록면
193 - 233 (41page)
DOI
10.37331/JKAH.2019.06.94.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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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안라국이 6세기 전반 가야제국 관계를 주도할 수 있게 된 요인을 안라국 대외관계사의 주요 쟁점인 ‘포상팔국 전쟁’, ‘안라인수병’, ‘안라국제회의’에 대한 검토를 통해 확인하려 한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포상팔국 전쟁’을 전하는 『삼국사기』 본기와 열전, 『삼국유사』의 기록을 비교·검토하면 전쟁의 대상이 안라국임을 확인할 수 있다. 포상팔국이 안라국을 공격한 이유는 함안 지역의 농경지를 확보하기 위한 것인 동시에 안라국의 세력 확장에 대한 반격에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안라국은 신라의 지원을 받아 포상팔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광개토대왕비문』의 ‘안라인수병’은 안라국을 직접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400년 고구려 남정 당시 고구려군이 빼앗은 지역을 신라인 수비병을 배치하여 지키게 한 사실을 가리키는 문구로 이해할 수 있다. ‘안라인수병’의 이해를 통해 안라국이 고구려-신라군과 임나가라-왜군이 충돌한 전쟁의 戰火를 피해 국력을 온존할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이것이 이후 안라국이 가야제국 가운데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다. 또한 이는 신라와의 우호관계에 따른 결과로 그 계기는 포상팔국 전쟁 당시 신라의 구원군 파견이었다. 따라서 포상팔국 전쟁의 시기는 고구려 남정이 이루어졌던 400년 이전으로 그 하한을 좁혀볼 수 있다.
‘안라국제회의’는 기존 연구에서 이해되었던 것처럼 ‘남가라·탁기탄’이 신라에 병합된 것을 계기로 개최된 것이 아니라 백제군과 신라군에 의한 탁순국 점령을 저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개최된 것이었다. 안라국은 왜를 끌어들여 우군을 확보하는 동시에 백제와 신라 사이를 저울질 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양국 모두를 안라가 마련한 국제회의의 무대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였다. ‘안라국제회의’는 탁순국의 점령 저지라는 개최 당시의 의도를 달성했으며, 이것이 가야제국 내에서의 안라국의 위상을 고양시켰다. 이렇듯 고양된 위상이 6세기 전반 가야제국의 관계를 안라국이 주도하게 한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포상팔국 전쟁’과 안라국의 관계
Ⅲ. ‘안라인수병’과 안라국의 存否
Ⅳ. ‘안라국제회의’와 안라국의 부상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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