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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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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민족문화학회 한민족문화연구 한민족문화연구 제66권 제66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7 - 46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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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이후 효종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북벌(北伐)은 실제로는 청나라와 어떠한 물리적 충돌이 없었기에 포로파간다에 불과했다. 오히려 조선은 청나라의 지원 요청을 받아들여 ‘이민족’의 준동에 공동 군사 작전을 펼쳤다. 지금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이기도 한 흑룡강(아무르강) 유역에서 러시아 세력을 제압한 이 두 차례의 출병(出兵)을 나선정벌 혹은 흑룡강원정이라 부른다. 척화론(斥和論)이 주도하던 당대에는 적대 세력인 청을 도와주었다는 시각이 우세하여 큰 관심을 환기시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신류(申瀏)가 주도한 제 2차 원정은 <북정일기(北征日記)>와 <북정록(北征錄)>과 같은 종군담이나 <배시황전>, <배시황부정록>과 같은 소설로 지어져 유포되었다. 신류의 ‘북정담’은 총을 다루는 포수(砲手) 중심의 편제로 수전(水戰)에서 화공(火攻)으로 승리하여 러시아 세력을 궤멸적으로 패퇴시켰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승리의 기억은 서양 세력의 위협이 점차 증가하던 19세기에 이르러 새롭게 인식되었다. 황당선(荒唐船)에 이어 이양선(異樣船)이 조선 연안에 본격적으로 출현하자, 정약용(丁若鏞)은 해군 정책 및 운용의 차원에서 신류의 승리를 검토했다. 제너널 셔먼호 사건 이후 강화도 유역의 서해에서 양요(洋擾)가 일어나자, 화공으로 적선을 물리친 2차 나선정벌의 기억이 소환되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과 후손들의 조상 현창 사업이 결합되면서 무력으로 이민족의 침략을 물리쳤다는 기억은 더 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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