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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지학회 온지논총 온지논총 제63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9 - 43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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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산 정윤영은 신사척사운동의 배후로 지목되어 함경도 이원으로 유배 다녀온 대표적인 척화론자이다. 그의 문집으로 󰡔후산집󰡕이 전하는데, 그 속에는 전 시기 지은 시작품 348제(題) 578수(首)가 수록되어 있다. 본고에서는 이를 토대로, 정윤영의 시 세계를 삶의 큰 변곡점이 되었던 유배를 중심으로, 유배 이전과 유배 시기 그리고 해배 이후 세 단계로 나눠 살펴보았다. 유배 이전인 1881년 전반기까지의 작품에는 전통 성리학자로서의 면모가 담겨 있다. 곤궁함 속에서도 유자로서의 의식을 견지한 채 유유자적한 삶을 유지했고 일반적인 유자처럼 성리학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유학도통(儒學道統) 관련 인물들에 대한 언급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1881년 2차례의 소장으로 인해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척화 사상은 한층 강화되었고 현실 인식에도 큰 변곡점이 되었다. 유배는 냉철한 현실 인식과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토로하는 기회가 되었다. 1년 6개월의 유배 시기에 지은 작품이 총 93제 115수임을 감안 한다면, 결코 적은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이 시기 현실 인식은 임진왜란의 소환으로 한 층 첨예화되었고 난세를 치세로 전환 시켰던 인물이나 그 인물과 관련된 공간에서의 작품을 통해, 당대 현실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 기저에는 성리학에서 비롯된 척화 사상이 깔려 있다. 유배에도 자신의 신념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심신의 여유를 찾은 이후, 북관의 인문지리에 관심을 보였고 유배지 주변을 탐방하기도 했다. 해배 초기에는 현실에 일정 정도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변복령, 단발령, 명성황후 시해 등 일본의 조치와 동학과 남학의 혼란 그리고 의병 활동이 전개되면서 척화에 대한 의식은 더 강화되었고 존왕양이 등의 성리학적 사유 또한 견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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