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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송정란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역사실학회 역사와실학 歷史와實學 第77輯
발행연도
2022.4
수록면
95 - 126 (32page)
DOI
10.31335/HPTS.2022.04.7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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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開闢)은 중국에서 사용되어 유입된 용어이다. 특히 소강절(邵康節)의 원회운세법(元會運世法), 주자(周子)의 선후천론을 통해 성리학적 담론체계를 형성했다. 이후 조선에서 소옹의 상수학이 전개되어 가면서 개벽(開闢)은 자주 언급되었고, 영조의 개벽은 여기에 영향을 받았다.
개벽과 비슷한 용어로 개벽(改闢), 재벽(再闢)도 사용되었다. 개벽(改闢)은 주로 홍수로 산천이 황폐화된 모습을 묘사하는 상황에서 사용되었다. 재벽(再闢)은 전쟁이나 정치적 사건에서 사람의 노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더 나은 세상을 열었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후 개벽은 본래 의미 이외에도 개간, ‘다시 개벽’의 의미하게 되었다.
영조는 개벽을 정치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영조의 개벽은 크게 두 방향으로 이루어졌는데, 첫 번째는 당론을 개벽해 탕평정치를 시행하려 했고, 두 번째는 민생의 문제를 개벽하는 것이었다. 전황과 양역의 폐단을 개벽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왕권이 안정되지 않는 한 문제를 해결하기가 힘들었다. 따라서 당론을 개벽해 탕평 정치를 통한 왕권의 안정화가 먼저 시행되었다. 임인옥에 대한 혐의를 벗고, 정통성을 회복한 이후에 영조는 민생을 안정시키는 위민정치로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조는 개벽을 주도할 주체적인 군주로 스스로를 내세우며, 정국의 주도권을 가져오려고 했다. 이와 더불어 백성들이 원하는 개벽(改闢)을 경장의 측면에서 대응해 나갔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개벽(開闢)의 개념
Ⅲ. 왕도탕탕(王道蕩蕩)과 개벽
Ⅳ. 경장을 위한 개벽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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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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