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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준희 (성공회대학교) 신현준 (성공회대학교)
저널정보
한민족문화학회 한민족문화연구 한민족문화연구 제82권 제82호
발행연도
2023.6
수록면
389 - 416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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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이전 한국 대중음악에서 만주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지역이었다. 만주는 많은 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했고, 공연이나 음반의 중요한 시장이기도 했다. 그리고 몇몇 한국 대중음악가는 만주에서 활동하면서 음악적 영향을 받기도 했다. 1920-30년대 만주에는 혁명의 혼란을 피해 이주해 온 러시아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하얼빈은 러시아인들이 특히 많이 모여 있던 도시였고, 거기서 음악 활동을 했던 러시아인들은 동아시아 각지 대중음악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중국이나 일본 대중음악에서는 만주 러시아인 음악가의 흔적이 분명하게 확인되며, 조선 대중음악에서도 그러한 만남과 영향의 흔적이 희미하게 보인다. 대표적인 예로 임씨 형제악단과 한영철이 있는데, 이들은 만주에서 먼저 음악 활동을 시작한 뒤 한국과 만주를 연결하는 연예 기획에 참여해 한국에서도 대중음악가로 활약했다. 또 만주에서 조선으로 흘러들어온 러시아인 음악이 조선 대중음악가와 상호작용했을 희미한 가능성도 자료를 통해 추정할 수 있다. 1930-40년대 조선 대중음악의 시장 규모가 중국이나 일본만큼 크지 않았기 때문에 만주로부터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지만, 당시 동아시아 대중음악 네트워크에서 조선이 예외가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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