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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임종진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철학연구 철학연구 제52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35 - 6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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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시기에 활동한 영남학파의 주요한 유학자들이 양명학에 대하여 어떠한 인식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가를 검토해 보는 것이본 논고의 목적이다. 왕양명(왕수인)과 관련된 대표적인 저술인 전습록이 중국에서 처음 간행된 것은 1518년이다. 그로부터 몇 년 후에 이미 조선의 일부 유학자들 사이에서는 양명학과 관련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또한 왕양명의 학문적 선배라 할 만한 남송 때의 육상산(육구연)에 대한 관심도 이때에 이미 명백히 존재했다. 그러나 양명학은 주자학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퇴계 이황과 그의 문인들의 비판에 직면하면서부터 전혀 다른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이후 사상계의 주류를형성한 조선의 주자학자들에 의해서 양명학은 조선에서 금기의 학문으로 배척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그다지 변동이 없었다. 그러나 근대 시기에 이르러 영남학파에 속하는 유학자들 중에서도 양명학에 대하여 긍정적인 인식 태도를 보인 인물들이 등장했다. 국가 쇠망의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그러한 난국을 타개할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 고민의 한 산물이 양명학에 대한 긍정이라는 모습으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절대적인 신봉의 대상이었던 주자학은 더 이상 현실권력과 연계될 수 없었다. 그런데 이후의 역사적 상황을 보면 영남에서 조차도 주자학의 영향력만 감소되는 것이 아니라 유학 전반의 영향력 감소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양명학 역시도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전반적인 유학의 쇠퇴와 함께 충분한 논의의 시간도 가지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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